*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스타
세계 3대 승용차를 꼽으라면 단연 롤스로이스, 벤츠 그리고 캐딜락이다. 미국에서도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한 번 타 보기도 힘들다는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선두 주자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스타이며, 링컨 컨티넨탈과 함께 대통령 전용차로 쓰인다.
캐딜락이 백악관 전용차가 된 것은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때부터였는데, 후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자 자신의 캐딜락을 몰고 4개월 동안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또 전설적인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 팬이었는데, 그는 취미로 자동차를 모으다가 마음에 드는 친구가 생기면 선뜻 선물로 주곤 했지만, 캐딜락은 예외였다고 한다.
* 탐험가 이름을 딴 캐딜락
캐딜락 자동차 회사를 세운 사람은 헨리 릴랜드라는 사람인데, 그는 1902년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캐딜락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회사들이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릴랜드는, 1701년에 디트로이트를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앙트완느 드 모드 캐딜락 장군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캐딜락이라고 했다.
한때 총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던 릴랜드는 1천 분의 1의 오차까지도 잡아 내는 귀신 같은 기술자였다. 이런 릴랜드의 솜씨로 엄격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캐딜락 1호 모델A는 1902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기통에 시속48km의 속도를 냈던 2인승 승용차 모델 A는 다음 해에 열린 뉴욕 모터 쇼에서 단 일 주일 만에 일 년치 예약이 다 끝날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캐딜락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무렵, 영국의 자동차 판매업자인 바네트는 캐딜락을 영국으로 들여갔으나, 영국 귀족들은 이 차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고심하던 바네트에게 캐딜락은 부품을 바꿔 끼워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깎고 다듬어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같은 모델이라도 모양에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부품을 갈아 끼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1천 분의 1의 오차까지도 허용치 않았던 캐딜락만은 예외였다. 바네트는 황실 자동차 클럽이라는 권위 있는 단체에서 캐딜락을 실험해 보이기로 결시했다.
1908년, 바네트는 캐딜락의 신형 모델 세 대를 황실 자동차 클럽 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조리 분해한 다음, 부품들을 마구 섞었다. 어떤 것이 어느 차의 부품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 다음, 바네트는 그 뒤섞인 부품들로 차를 다시 조립하였다. 그리고 다시 조립한 차들로 800km를 쉬지 않고 달려 보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정밀 검사를 해 봐도 분해하기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웬만한 차 같으면 고물이 되어 버렸을 텐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캐딜락은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실 클럽에서 수여하는 드와 트로피를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드와 트로피를 받은 바로 그해, 캐딜락은 당시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제너럴 모터스 사에 넘어갔다.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 차종으로 내세운다는 조건으로 릴랜드가 제너럴 모터스의 듀런트에게 판 것이었다. 당시에 제너럴 모터스는 뷰익, 올즈모빌, 폰티액을 거느린 거대한 기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