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의 하나인 자동차가 만들어진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 자동차는 인류에게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게 가능하게 해준 것이 가장 큰 혜택임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자동차의 원초적이고 매력적인 요소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Speed... 최초의 자동차가 만들어지면서 거의 동시에 사람들은 이 새로운 쾌락의 세계에 빠져는다. 최초의 레이스는 분명 자동차가 나오는것과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보다 빨리...보다 멀리... 속도라는 쾌락에 인간은 너도 나도 빠져들었다. 죽음을 잊게 만드는 스피드의 마력(魔力)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보다 빠르고 짜릿한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자동차는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중심 고속도로인 A1도로...
이길을 타고 달리나 보면 Emilia Omagna주를 들어서서 만나는 도시 Modena...
Secchia, Panaro의 두 개의 강사이에 위치한 평탄한 도시로 대학과 상공업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100년 전만 해도 이 도시는 그냥 평범한 중소 도시였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이곳은 전세계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매니아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도시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Rosso Corsa의 열정과 혈통을 이어받은 말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1898년 2월 18일에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 모데나(Modena)의 외곽에서 Enzo Ferrari는 태어난다. 당시 아버지인 Alfredo Ferrari는 철도용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때문에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고 1900년 당시 모데나를 통틀어 자동차가 30대 밖에 없을 때
페라리가의 집안에는 프랑스제 드디옹 부통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Enzo는 어려서부터 자동차와 가깝게 지낼수 있었다. 또한 어린 Enzo는 10살 때 아버지, 형과 함께 본 자동차 경주에 큰 인상을 받게 된다. 이같은 유년기의 경험이 Enzo의 운명을 결정지었을지도 모른다.
제1차 세계 대전... 아버지와 형은 사망하게 된다. 가족의 죽음과 전쟁...그리고 종전후의 경제 공황은 청년 Enzo를 곤경과 방황의 시기로 이끈다. 그는 학교를 떠났고, Mondena Fire Brigade'workshop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말에 Turin에서 시범 운전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Milan에 있는 CMN(Construzioni Meccanche Nazionali)으로 옮겨서 카레이서 겸 시범운전자가 되었다.
젊은 드라이버 Enzo
이듬해 당시 가장 명성있던 'Alfa Romeo'로 자리를 옮긴 Enzo는 레이스 및 테스트 드라이버로써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2위로 골인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후 많은 레이스에서 활약한 Enzo는 1923년 세비오 서키트에서 열린 소규모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엔리코 바라카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1차대전 당시 이태리 최고의 파일럿으로 활약하다 1918년 사망한 프란시스코 바라카의 아버지로서, 프란시스코의 비행기에 그려진 뛰는 말 모양의 상징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이러한 계기로 현재의 페라리 앰블럼이 되었다.
1924년 알파로메오팀의 국제 그랑프리 드라이버가 되었으나 이내 레이스를 포기하고 드라이버로서의 경력을 마친다. 후에 그는 알파로메오의 자동차 판매 보조직을 거쳐 1939년 11월 Alfa Racing Division의 중역(이사)이 된다.
1920년대 후반 Enzo는 Modena에서 회원들의 자동차
경주대회를 개최할 목적으로 1929년 레이싱팀 'Scuderia Ferrari'를 결성한다. 뛰어난 수완능력으로 스폰서와 협력업체를 모은 Enzo는 알파로메오의 'semiworks'로서 활동하게 된다.
'Scuderia Ferrari'는 Enzo가 매니저로서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 곳이며 페라리 1세기역사의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1933년 알파로메오사는 경영부진을 이유로 레이스 활동을 Enzo의 'Scuderia Ferrari'에게 위임한다. 이때부터 30년대 말까지 'Scuderia Ferrari'는 유럽의 그랑프리를 휩쓴다. 하지만 1938년 알파로메오는 '알파 코르
세'라는 부서를 세우며 'Scuderia Ferrari'팀을 해산해버린다. Enzo는 이때 알파로메오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계약조건에 따라 이후 4년간 'Scuderia Ferrari'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엔쵸는 회사를 독립적인 회사(Auto Avio Costruzioni Ferrari)로 바꾸었고, 그후 그 회사는 로마에 있는 국립항공회사인 Piaggio와 RIV와 함께 일했다.
이후 Enzo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의 스피드와 레이스에 대한 열망은 막을 수 없었다. Enzo는 연합군의 공습을 피해서 (당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이끄는 전쟁도발국이었다.) 1943년 공장을 모데나 남부의 마라넬로로 옮겼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이름 '페라리'를 내걸 수 있었기에 Enzo는 다시 뛰기 시작했고 사업은 다시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었다. 하지만 마라넬로의 공장은 1944년 폭격으로 부서지고 만다.
1946년... 엔쵸는 재기한다. 이해에
첫 '페라리'의 이름을 가진 야생마가 탄생한다. 알파로메오 시절 엔쵸와 같이 손발을 맞추던
엔지니어인 조아치노 콜롬보가 설계한 1500cc V12 72마력을 장착한 티포125였다. (125...이것은 페라리의 전총적인 작명법인 실린더당 배기량으로 붙인 이름으로 V12 페라리의 전통이 된다.) 이 차는 1947년 레이스카인 125S로서 세상에 붉은 자태를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다. 피아첸자에서의 데뷔전은 안타깝게도 2대가 모두 리타이어 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V12엔진 모델로서 큰 화제를 모은 페라리는 티포159와 166등 발전형을 개발하면서 또 다른 엔지니어 아우렐리오 람프레디를 끌어들여 스포츠카 개발 (이당시까지 정식 로드카는 나오지 않았다)에 참여시킨다.
- 조아치노 콜롬보는 엔쵸 페라리와 마찰을 빚고 (소위 말해 대판 싸우게 된다.) '마세라티'
로 옮기게 된다. 마세라티 역시 페라리 타도를 외치고 레이스에 참여 발전하게 된다.
1948년 첫 도로용 스포츠카인 166인터(V12 2000cc 110마력)가 탄생하여 토리노 모터쇼에서 선보이게 된다. 당시 페라리는 경주용차의 섀시와 엔진에 카로체리아(Carozzeria)가 만든 보디를 얹고 도로용 장비를 추가해 로드카 페라리를 만들었다.(이것이 페라리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승용차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엽기적인 일이다.) 당시 보디 제작에 참가했던 카로체리아들은 비냘레, 자가토, 투링, 피닌파리나, 기아등이 있었지만 점차 아름다움과 성능을 겸비한 피닌파리나가 독점하게 되고 이후 본격적인 로드카 페라리.. 즉 붉은색의 아름다운 '예술'과 뛰어난 성능의 '기술'을 겸비한 명차가 태어나게 된다.
1957년 마지막 밀레밀리아 출발행사에서의 Enzo
그 시절 국제 자동차 연맹(FIA)가 창설되고 1950년 F1이 열리기 시작한다. 페라리는 초창기의 F1을 시작으로 다양한 레이스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페라리와 호각을 다투었던 것은 다름아닌 알파로메오... 매번 레이스에서 치열한 타이틀 쟁탈전을 벌이며 알파를 뒤 쫓는다. 마침내 1951년 프로이란 곤잘레스(Frolian Gonzales)가 영국 실버스톤에서 알파159의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 : F1에서 5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전설적
드라이버)를 누르고 체커기를 받는다. 이것이 페라리의 역사적인 첫 F1 우승이다.
이 우승으로 Enzo는 눈물을 흘리며 유명한 일화를 남긴다.
"나는 기뻐서 울지만 나의 눈물에는 또한 슬픔이 담겨있다. 나의 어머니(알파로메오)를 죽였기 때문이다."
-Enzo Ferrari
이후 로드카에선 '250시리즈'를 선보이고 각종 GT레이스에도 승리하면서 페라리는 레이스뿐만 아니라 최고의 스포츠카 메이커로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60년대 중반 세계의 자동차 업계가 큰 회사를 중심으로 합병같은 기업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페라리는 로드카 판매로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첫 대량생산 모델이며 리틀 페라리의 원조인 V6엔진의 소형 미드쉽 스포츠카 'dino206'시리즈로서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디노는 처음에 V12엔진이 아니면 페라리라고 부를 수 없다라는 엔쵸의 고집으로 페라리의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69년 피아트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페라리의 식구가 된다.)
Ferruccio Lamborghini (1916~1993)
1963년 엔쵸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라는 당돌한(?) 이탈리안을 만나게 된다. 페루치오는 트랙터 공장을 운영하여 거부가 되었고 그 역시 페라리의 오너였다.
60년대 초반 페르치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250 GT 한 대를 구입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서서 여러차례에 걸쳐 수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엔쵸자신은 사실 로드카엔 별 관심이 없었다. 레이스 활동이 항상 우선이었고 여전히 페라리는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경주차'였기 때문에 다른 양산차와 비교했을 때 실내내장과 편의성, 품질은 열악했다.
한 번은 페르치오 람보르기니가 클러치를 수리하려 공장에 맞겼던 자신의 페라리를 찾으러 갔는데 공장에서는 여전히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람보르기니는 엔초 페라리를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페루치오는 다른 오너들과는 달리 고집통 엔쵸에게 직접 찾아가 불만을 토로한다. 당시 엔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페라리를 살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섣불리 불만을 보이지 못했지만 페루치오의 고집은 엔쵸못지 않았다.
하지만 페루치오는 퇴짜를 맞는다. 엔쵸가 '당신같은 촌뜨기가 스포츠카를 알면 뭘 아느냐. 트랙터와 스포츠카는 다르다'고 호통을 쳤고 자존심 상한 페루치오는 페라리 공장에서 15km떨어진 곳에 'Lamborghini Automobili'를 세우고 자신만의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게 람보르기니의 시초이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와 함께 스피드 경쟁을 벌여 급기야 최고시속 300km/h를 초과하는 수퍼카들이 탄생하게 된다.
참고로 엔쵸는 최고의 F1팀과 스포츠카 메이커로서 페라리를 이끌며 여러 상을 수상하게 된다.
1924년에 스포츠상의 공헌에 대해 Cavaliere의 이태리 상을 받았고, 이후 이태리로부터 더 큰 상을 받았다.(1927년 Commendatore, 1950년에 Cavaliere del Lavoro) 1960년에 그는 Bologna university로부터 기계공학분야(Mechanical engineering)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1988년에 Modena university는 그에게 물리학 명예학위를 주었다. 그는 1962년 유엔에서 Hammerskjold 상을 받았고, 1965년 Columbus 상, 1970년에 이탈리아 예술문화학교로부터 Gold Medal(금메달)을, 1987년에 the De Gasperi Award(상)을 받았다.
1963년에 Enzo Ferrari는 Maranello에 훈련학교인 Istituto Professionale per l'Industria e l'Artigianato를 설립하였으며 1972년에 그는 모든 페라리의 성능 테스트를 하게 될 Fiorano 서킷를 만들었다.
엔쵸의 활동은 그의 나이 90세까지 결코 시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79년 F1 우승이후의 계속된 만년 2,3위의 부진...수퍼카 전쟁을 통해 많은 스포츠카 메이커들의 도전...
하지만 스피드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엔쵸는 90세가 되던해 마지막 역작 F40으로 당시의 모든 수퍼카 전쟁의 왕좌에 오르며 이듬해 1988년 8월 14일 고향 Modena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Alfa Romeo'에서 자라 'Ferrari'를 세웠고 그의 고집으로 'Maserati'가 성장하고 'Lamborghini'가 태어나게 만든 Enzo Ferrari...
자동차 100년사 중 일생 90년을 인류에게 스피드와 레이스를 선사하고 떠난 인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1947년부터 88년까지 Enzo Ferrari의 리더아래 'Scuderia Ferrari'는 전세계 자동차 경주에서 5000회 이상 우승하고 25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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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9월 29일날의 Enzo Ferrari 친필..
흔하지 않은 전문이 다 있는 서류입니다..
1943년 9월 29일이면 아직 FERRARI 회사가 설립되기 전이지요...
하지만 이미 Cavallino Rampante는 선보여져 있지요..
Raro ed eccezionale documento interno, SCRITTO di pugno e 'FIRMATO' da Enzo Ferrari.
Il documento ?datato 29 Settembre 1943, quando la Ferrari, come casa automobilistica non era ancora stata creata,
ma il simbolo con il Cavallino Rampante era gia' presente. Per vero Ama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