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동안 페라리는 F1과 르망의 무대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성능을 인정받아왔고, 엔초 페라리의 카리스마는 전세계에 티포시라는 광신도를 만들어냈다. 페라리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로 인정받는 이유는 비단 뛰어난 성능이나 레이스에서의 화려한 전적뿐만은 아닐것이다. 예술품이라 불리는 뛰어난 스타일은 페라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이것이 바로 피닌파리나와 페라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피닌파리나- 피닌파리나는 1930년 '바티스타 파리나(Battista Farina)'가 토리노에서 '카로체리아 피닌 파리나(Carizzeria Pinin Farina)'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였다. '피닌(Pinin)'은 '작다'라는 뜻으로 설립자인 '바티스타 파리나'의 키가 작아 불리던 애칭이었다. 이 애칭이 정식회사이름이 된 것은 1966년이었다. 당시 이태리 대통령의 특별령 형식으로 '파리나'라는 성이 피닌파리나로 바뀌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바티스타 파리나'는 천부적인 소질과 당시 스타빌리멘티 파리나를 운영하던 형 '지오반니 파리나'에게서 자동차 제작 기술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곧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알파로메오, 란치아 디람다와 아스투라, 피아트 아르디타 등 대표작을 선보였다. 1947년 선보인 '치시탈리아(Cisitalia) 202'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구전시된 기념비적인 모델로서 현재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을 잡아준 모델이다.
Cisitalia 202
2차대전 동안에는 사세가 어려워 엠뷸런스와 비행기 의자, 값싼 스토브까지 만들었다. 전후 자동차로 돌아와 50년대에는 피닌파리나의 기반을 닦았다. 54년부터 나온 알파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는 2만 7천대가 생산되면서 산업적 생산체제로 대전환을 맞게 된다. 이때부터 대기업들의 회사 이미지 강화를 위해 만드는 스페셜리티카 프로젝트도 맡게 되었다. 피닌파리나는 자체개발과 함께 완성차를 생산할 수 있는 체재를 갖춘 것이다. 66년 설립자인 바티스타 파리나가 별세하자 아들인 세르지오 피닌파리나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86년 증권시장에 주식이 상장되면서 피닌파리나는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에서 피닌파리나 공업주식회사로 승격되었다. 피닌파리나는 현재 2개의 회사로 분리,운영된다. 제품 생산 위주인 피닌파리나 공업사와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 개발이 목적인 피닌파리나 연구소이다. 이곳은 피닌파리나 아이디어 핵심으로 초기 실험부서로 출발해 82년부터 별도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직원은 디자이너를 포함 2천명 정도이며 연간 3만대 이상의 차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
페라리와의 인연은 1952년 창업자 '바티스타 파리나'가 엔초 페라리와 손잡고 250을 디자인 하는것으로 시작되어 테스타로사, 디노, 250 시리즈, F40, F50등의 명차를 만들어냈다. 또 페라리 외에도 피아트 130 쿠페, 란치아 베타 몬테카를로, GM 크로노스등 독창적이고 뛰어난 스타일의 명차를 수없이 디자인 했다.
- 페라리의 아름다운 보디 어딘가엔 'DESINO Pininfarina'라는 엠블럼이 붙어있다. 요즈음 페라리와의 결별설등이 나돌고 있지만 이제 땔래야 땔 수 없을 정도로 되어버린 둘 사이의 관계가 쉽게 멀어지지는 않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