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2월6일, 차에 대해선 엔진오일 교환과 타이어 교환밖에 모르던 필자가 큰 꿈을 안고 용인에 왔다. ‘미캐닉’ 이란 말을 듣기엔 너무나도 쑥스러웠던 당시 나는 차에 ‘미쳐’ 있는 사람이 정말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같이 일하던 친구 1명은 차 이름만 대면 엔진출력, 토크, 타이어사이즈까지 줄줄 나올 정도였으니까...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열심히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미친’ 사람들이 많은 만큼 생활 자체도 거의 비정상적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기뻤고 지난 다음 생각해 볼 때도 ‘좋은 추억거리’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비춰진 건 사실이다. 잠시도 허용되지 않는 ‘개인시간’,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조차 흐릿할 정도로 바쁜 일정... 잠시 여담으로 필자는 94년까지 한끼도 거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용인’에 온 이후로는 참 많이 걸렀던 것 같다. 지금도 레이스 미캐닉들은 많은 밤을 새우고 일하지만 당시는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했다. 많은 선배들 앞에서 낮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의 기록(?)은 70시간동안 잠시도 눈을 붙여보지 않은 것이다.
95년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기 때문에 당시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필자가 속해있던 ‘캠소닉’ 레이싱팀은 경제적인 이유로 95년 12월 ‘팀 해체’ 라는 현실을 가슴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팀 해체 후 몇 명의 팀원들은 실업팀(대기업이 운영하는 팀)으로 스카웃 되어 가고 몇 명의 팀원들은 레이스가 아닌 각자의 길을 갔다. 필자는 1년 간 너무도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레이스 유학’을 결심했다.
후보지에 오른 곳은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었다. 미국은 ‘Russell Racing School'을 생각하고 있었고 일본은 몇 군데의 Mechanic School들, 영국은 정통적인 ‘Race Car Engineer'의 길로 정규대학을, 호주는 TAFE(우리 나라의 전문대 같은 곳)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미국, 영국, 일본의 학교들 소개는 추후에...)
비교를 해보고 최종적으로 선택한곳은 Australian F-1 GP 가 열리는 도시 Melbourne에 위치한 Box Hill Institute of TAFE였다. Box Hill에 Automotive - Race Car Technology란 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 학교의 Manager가 한국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96년 3월14일 그 Manager를 호주 대사관에서 만났다. 영어로 작성한 이력서와 사진을 첨부해 그와 만난 자리에서 필자는 꿈이 무엇이며 어떤 공부를 하고싶다고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그는 ‘네가 찾던 곳이 바로 우리 학교’라며 당장 오라는 것이었다. 바로 준비를 하고 그 해 5월말에 호주행 비행기에 부푼 꿈과 함께 몸을 실었다.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차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어학 연수를 시작했다.
어학 연수는 Melbourne에 있는 La Trobe University에서 받았는데,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무엇이든 배운다는 열정에 부풀어서 나름대로의 ‘호주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잠시뿐이었다. 7개월의 어학 연수를 마치고 Box Hill로 찾아갔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학생수가 적은 관계로 Race Car Technology를 이번 학기에 운영하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세상에... 정신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물어보았다. ‘다음 학기에는 운영한다는 것을 보장하느냐?’
어렵게 물어본 말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No' 운영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역시 인원이 적으면 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 학교에서는 호주 레이스계의 많은 사람들이 교수로 있는 다른 TAFE의 일반 자동차학과에 입학을 시켜주고 교수들이 교대로 내게 교육을 시켜주도록 주선을 해준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바로 그곳에서 추천한 TAFE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상상을 해보시라. 학교에서 단 한 명의 학생, 그것도 외국인을 위해 특설학과를 운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약 1달을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업이 없는 교수를 찾아가 질문을 하는 생활을 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이것을 위해 이 먼 나라까지 왔던가’하는 생각이 들며 그만 두기로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었다.
다시 Box Hill에 찾아갔고 나의 ‘배울 권리’를 주장하여 20회의 ‘Race Car Technology -Short Course를 얻어내고 다니던 TAFE를 그만두었다.
어렵게 얻어낸 20회의 Short Course, 이 강의도 내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모르면 알 때까지 강사를 귀찮게 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그 강사는 호주에서 굉장히 유명한 서스펜션 엔지니어였다. 하루는 학생모두를(약7~8명) 이끌고 자신의 공장으로 갔다.
약 200평정도 되는 공장에 차량이 약 10대 정도 있었고, 그 중에는 NASCAR 경주차도 있었다.
미국에서 호주에 경기를 하러오면 많은 팀들이 그에게 의뢰를 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Shock Absorber Dynamometer'도 보았고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Short Course 과정이 약 2달이었는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간 것 같다.
이 두 달간의 교육과정이 필자가 받아본 ‘Race Car Technology'의 전부이다.
처음 유학을 떠날 때는 학교에서 1년 간 배우고 2~3년 정도 현지의 레이싱 팀에서 경험을 쌓다 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높디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97년 4월, 나의 ‘호주유학’은 1년간의 짧은 생을 마친다. 1년 간 필자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만났던 그 매니져의 얼굴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기도 있지만 분명 헛된 1년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1년간의 외국생활에서 몸에 밴 생활력과 정신력, 떠나기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영어 구사, 처음으로 받아본 Race Car에 대한 이론교육(짧아서 아쉽긴 했지만), 꿈에 그리던 F-1관람... 짧은 기간동안 나름대로 알찬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다.
잠깐 F-1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F-1이 열리는 경기장 ‘Albert Park’는 Melbourne City의 남쪽에 위치해 있고 필자가 살고있던 집은 City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거리 상으로는 30Km 정도이다. 목요일에 수많은 Race Car들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잠을 못 이뤄 금요일에 늦잠을 잤다. 택시를 부르고 집 앞에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많이 듣던 소리가 들린다,,,‘아 ~ 앙앙앙’ 바로 30km 떨어진 Albert Park에서 들려오는 F-1 Sound. 귀기울이면 변속하는 소리까지 정확히 들린다. Melbourne이 조용한 도시이긴 하지만 30km 밖의Race Car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소리가 바로 사람들을 F-1에 미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여러분 중에 F-1을 관람을 할 사람이 있으면 가까이에서 F-1을 보기 위해선 반드시 ’Survival Kit‘를 구입하시라. 귀마개와 소형 지도 등이 있는데 귀마개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F-1도 절대 볼 수 없다.^^*
앞으로 필자가 몇 번이나 더 F-1을 관람할지는 모르지만 그 ‘첫 경험’은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 다시 돌아 왔을 때는 처음부터 ‘완전귀국’의 방향은 아니었다. 호주에서 2월부터 필자는 또 같은 고민에 들어갔다. 대상지에서 ‘호주’만 제외된 채. F-1 세미나에 가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 영국의 한 대학을 소개받았고 교수와 전화통화도 몇 번인가 했다.
어차피 ‘호주 생활’ 은 정리해야 했으므로 ‘돈 안 드는’ 한국에 가서 고민하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미국, 일본, 영국의 선택이 아니고 당시 필자의 나이 29, 호주생활 1년 간 쓴 돈도 몇 천만 원, 다시 떠나면 최소 2년...
과연 나의 공부를 위해 다시 떠날 것인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배울 것인가.
그때 필자의 스승인 ‘최상진’씨에게 전화가 왔고, ‘오일뱅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사실 별로 망설이지는 않았다. 스승이 몸담고 있는 팀이고, 당시만 해도 최고의 팀이었기 때문에 쉽게 오일뱅크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안되어...
이때부터 필자의 본격적인 제2기 미캐닉 생활이 시작된다. 1기나 유학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었다. 다음 호에서는 현재 국내의 미캐닉 생활에 대해 여러분들이 좀더 알 수 있도록 필자를 비롯한 여러 미캐닉들의 실제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미캐닉이 돠는길-Tip
절대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꿈을 가슴속에서만 키우지 마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꿈과 생각은 실제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TV로 경기를 보며 ‘난 미캐닉이 될 거야’ 라고 꿈을 키우기보다는 경기장에 직접 와서 미케닉들과 얼굴도 부딪혀가며 최소한 그들의 얼굴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컴퓨터가 많은 것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을 빼앗아 갔다. 레이싱팀의 홈페이지에 ‘미캐닉이 되고 싶어요’ 꼬 ~옥 답장주세요. 그리곤 답이 없으면 욕을 한다, 자신의 노력을 몸으로 보여라.
최소한 나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