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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힐, 세나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관리자 [2004-05-03 ]

D힐, 세나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아일턴 세나의 충돌사고는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이말은 10년전인 1994년 당시 세나의 윌리엄즈 팀메이트였던 데이몬 힐의 말이다. 힐은 10년전을 회고하며 입을 열었다.

힐은 당시 세나의 팀메이트였다. 그런 그가 "세나의 크래쉬의 원인을 세나의 경주차에 집중하는 것은 착오(오해)"라고 말했다. 즉, 세나 스스로의 실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힐은 대담하게도 '이 브라질리안 스타, 아니 이젠 전세계적인 영웅이된 세나에대해 실수가능성을 제기하는것 자체가 그동안 비상식적으로 보여질것을 모두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마당에 감히 누가 그런 의문을 다시 끄집어내겠느냐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민감한 그 문제에 다시 이의를 제기한 것과 같다.

힐은 당시 세나와같은 윌리엄즈경주차를 드라이브했다. 그때문에 그는 34세로 숨을거둔 영웅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에 다소근거있는 정황들을 설명할수있다고 자신하고있는것같다. 곧 지금 그 자신이 하는말들에 대해 어느정도 확신이있다는 애기다.

힐은 '타임'지에서 말했다. '어느 누구도 아일턴 세나와 자신이 어떻게 윌리엄즈 경주차를 조종했는지 알수는없다. 아직 달구어지지않은 타이어를 가지고 코너에서든 레이스전체에서든 10년전 5월 1일 그날의 모든것에대해서 세나와 나 이외에 그 정황을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 그리고 F1드라이버를 제외한 누구도 그들이 경주차를 칵크핏에서 어떤식으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루는지 알수가없다. 그렇기때문에 F1드라이버이지만 세나자신이 아닌 우리드라이버들도 세나의 '생각'은 물론 그당시 정말 세나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수없다는것이다.'

'당시의 윌리엄즈팀 보스 프랭크 윌리엄즈와 기술감독 패트릭헤드 그리고 수석디자이너 애드리안 뉴에이도 190마일의 속도로 탐브렐로의 콘크리트벽에 충돌한 세나의 크래쉬에대해 이탈리아법원에 수차례 소환되어 '과실치사'혐의로 조사를 받고 증언을해야했다.'

'이탈리아법원의 전문조사관들은 세나경주차의 스티어링칼럼곧 핸들축이 부러졌다는데서 원인을 찿았다. 사실 객관적으로도 그것밖에는 노련한 세나가 콘크리트벽을 뚫어버릴듯 충돌하게된 어이없는사고의 원인을 찾을수 없었을것이다. 그리고 스키어링 칼럼은 확실히 부러져있었다.'

'윌리엄즈와 헤드 그리고 뉴에이는 첫 소환조사이후 1997년에도 볼로냐법정에 섰고 모든것에대해 심문받고 진술했으며 1999년에는 항소심을 열게하기도했다. 또한 2002년과 2003년에도 이탈리아 검사측에서 윌리엄즈팀관계자에대한 재소환을 시도하기도했다. 결국 이탈리아대법원의 심리나 판결분위기는 세나의 크래쉬의 원인을 부러진 스티어링 칼럼으로 기인한 '경주차의 물리적인 결함(실수)'으로 보기때문에 윌리엄즈관계자들에대한 '과실치사'혐의는 여전하며 판결도 아마 이범위에서 거의 확실시 된다고 말할수있다. 지금도 재판은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비록 힐의 코멘트로 보아서 그는 전세계 세나의 팬들의 거센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힐은 세나의'과실'혹은 '자해'가능성에대한 그의 '심증'을 굽힐의사가 없어보인다.

힐은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나의 죽음에 대해 미스테리나 음모론등을 만들어냈다며, 이탈리아법원의 조사관들이 주장하는 '부러진 스티어링칼럼이론'이나 사고경주차의 드라이버였던 세나자신에대한 '과실의혹'제기도 이같은 가설 혹은 이론들중의 하나일뿐이라며, 자신이 언급한 내용은 단지 이미 알려진 의혹들중 한가지에 세나와 가장 가까웠던 팀메이트 당사자로서느끼는 개인적인 믿음일뿐'이라고 주장했다.

힐은 '세나가 실수한것으로 확신한다'고 거듭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받아들이길 거부한다'고 말하며 한술더떠 '아일턴 세나는 그의 레이싱 캐리어에서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었으며 그의 마지막은 그러한 실수들중 가장큰 실수였을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나는 언제나 경주차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사선을 넘나드는 필사적인 드라이빙을 펼쳐왔기때문에 라이벌에게 추월 당하느니 차라리 크래쉬를 택했을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세나의 크래쉬는 어느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세나자신의 두발'에서 운명이 갈렸다고 보는것이다.'

'그렇다. 당시 세나는 이미 레이싱계에서 신처럼 숭배받는 인물이며 영웅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앞으로 성취해야할 목표에대한 부담감이나 공포나 두려움에 의연해 질수있었을것이다. 그래서 어느순간 그는 모두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유감스럽지만... 죽음으로서 영웅으로 영원히 남아있고싶은 어쩌면 레이서로서 습관적으로 해오던 비장한 고민을 찰나와 같은 순간에 결정해버린것이다.'

힐은 당시에도 최종예선에서 오스트리아인 롤랜드 라첸버거가 사망했을때 다음날의 '결승레이스는 취소했어야옳았다'고 주장한바있다. 그러나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그런것이 스포츠이고 흥행이벤트의 성격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고도 말했다.

'결국 아일턴 세나는 이런종류의 스포츠이벤트에서 그렇게 압박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목숨을 잃을(버릴)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세나는 그날 이몰라의 일요일에서도 뭔가 선택을 해야만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적이고 슬픈일이었다. 그는 잘못된길을 간것이다.'

힐은 그러나 '모든책임을 세나의 사망때까지 그동안의 드라이버의 안전에 지나치게 소홀했던 'F1이라는 이벤트 관리자들''에게 돌렸다. 힐은 '그들을 발아래두고 분이 풀릴때까지 밟아짖이겨주고싶은 감정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이상은 모두 데이몬 힐의 말이다.

94시즌 당시, 마이클 슈마허가 아일턴 세나를 개막전부터 마지막순간까지 압박했다는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그당시 세나는 전방위적으로 심각하게 궁지에 몰려있었다. 세나의 사고가 기술적인 결함으로인한것이든, 아니면 심리적인 압박감의 결과로인한 자해였든지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는것은 현재까지도 이탈리아법원은 경주차의 물리적인 결함에 책임을 묻고있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슈마허는 최근 리포트에서 다음과같이 말했다.

"세나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사실 그당시 나는 세나를 지나치게 압박했었던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94년당시 나의 넘치는 자신감과 이전 레이스의 결과들이 말해주고있고, 3연속 폴포지션자인 세나의 3연속리타이어가 증명하고있다. 그때문에 세나는 마지막순간까지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고있었을것이다." "세나의 사후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일말의 자책감에 고민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냈었다." "나는 그에게 도전하며 경쟁하고싶었지 그를 그런식으로 떠나보내게될줄은 몰랐다." "그것이 나의 마음한켠에 얼룩져 남아있는 세나에대한 안타까운감정이라고 할수있다."

반면 1994년 당시 심텍 포드의 드라이버였던 '버트란트 가쇼'는 힐의 코멘트에 간단히 말했다. "세나의 실수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해할수없다. 세나는 그런 코너에서 실수할 사람도아니고 탐브렐로는 죽음을 선택할만한 위험한 코너도아니었다. 세나의 사망원인을 세나에게 돌리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우려한다." "당시 탐브렐로는 드라이버들에게 전혀위협적인 코너가 아니었다."

요컨데, 아일턴 세나, 그의 영향력은 그동안 F1의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6회월드챔피언의 반열에오른 지금의 슈퍼스타인 마이클 슈마허의 이름을 무색케할정도의 위대한존재로서 인상적으로남아있는것은 사실인것같다.




출처 : 지피코리아 (WWW.GPKOREA.COM) 박광태기자 (1205-9@hanmail.net )